기록
-
영문학 안녕!기록/흐르는 2021. 3. 15. 14:28
금요일에 이사 가는데 어제 오후가 되어서야 방 정리를 시작했다. 그동안 이 집에서 방을 여러 번 옮겨 다니면서 짐을 꽤 많이 정리했는데도 여전히! 버릴 것들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왠지 아까워서 못 버렸던 이 책들도 드디어 처분한다. 학부 때도 사실 문학을 접하는 게 좋았지 문학 작품 하나하나를 깊이 파고드는 걸 엄청 즐기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문학은 예술인데 예술을 왜 분석하냐는 어쭙잖은 핑계와 함께) 그래도 약간 훈장처럼 남겨두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 원서는 몇 권 남겨놨다ㅎ... 저 책들의 제목을 읽으면 책의 내용이나 분위기보다도 저 작품을 공부했던 때의 강의실 느낌이나 학과 교수님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분주하게 서늘했던 강의실이나 미성숙한 우리들을 아이 보듯 바라보던 교수님의 측은한 눈빛 ..
-
중남미 아저씨와 따뜻한 사람들기록/흐르는 2021. 3. 10. 14:15
일하다가 뜬금없이 뉴저지의 한 마트 앞에서 펀드레이징을 하던 내게 따뜻한 커피를 건네주던 남미 아저씨가 생각났다. 마트 옆 작은 빵집에서 일하던 분이셨는데 홀로 서있는 내게 흰색 제빵옷과 모자를 쓰고 나타나 방금 타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나눠주고 가셨다. 그분의 이름도 출신지도 아무것도 모르지만 중남미 사람의 얼굴과 체형이셨던 것만 기억이 난다. 멕시코보다는 아래, 콜롬비아보다는 위 그 어디쯤...! (누가 나를 중국보다는 오른쪽, 일본보다는 왼쪽 그 어디쯤 사람이라고 기억하면 조금 슬프고 웃길 것 같다) 그분 덕분에 중남미 아저씨들은 내게 따뜻하고 온화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모금 활동을 하면서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영어도 잘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귀 기울여 내 설명을 들어주시며 미국 ..
-
오늘의 귀여움기록/흐르는 2021. 3. 5. 22:12
오전에는 흐리고 미세먼지도 심하더니 오후가 되자 날이 개고 공기도 맑아졌다. 수업을 마친 후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에 마음이 들떠 할 일을 모두 제치고 나가 걸었다. 가벼운 봄자켓을 입고 음악을 들으며 별생각 없이 돌아다녔다. 조용한 내 방과는 다르게 바깥은 활기가 넘치고 어느덧 봄 내음이 나는 것 같았다. 해가 떠 있을 때까지는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일만 하던 일상이었고 꼭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요 며칠 낮 산책을 해보니 햇볕을 쬐며 생기를 느낄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대를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일부러라도 나가서 걸어야겠다! 떨어진 화장품 몇 개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가 갑자기 치킨을 만들고 싶어서 튀김가루를 사러 홀린 듯이 또 나갔다. 집으로 오는 길 발견한 귀여운 느티나무 이름..
-
춥지만 화창한 날기록/흐르는 2021. 3. 3. 00:27
내 방 창문 풍경. 오늘 화창했던 날씨에 비해 사진은 칙칙하지만 2년 전, 1년 전 파릇할 때 찍었던 사진들과 함께 추억으로 남겨둔다. 방에서 종일 혼자 근무하는 나의 숨통을 터주던 참 고마운 풍경이었는데, 이제 이사 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제 '구글 번역기와 번역사의 미래' 를 제목으로 통찰력 있는 척 하는 글을 쓰다가 역시 어려워서 저장만 해두었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빌게이츠의 새 책,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 (How to Avoid a Climate Disaster)'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며 기후 재앙이 닥치기까지 7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후 변화, 지구온난화, 환경에 대한 경고 섞인 말들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또 이제는 정말 시간이 별로 남..
-
시간 뭉개기기록/흐르는 2021. 3. 1. 00:34
오늘 아침에 딱 일어났는데 '와, 어제도 정말 시간을 뭉갰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흘려보냈다'도 아니고 '의미 없이 보냈다'도 아니고 어쩜 딱 '뭉갰다'라는 표현이 일어나자마자 떠오를 수가 있지? 그만큼 시간을 정말 뭉개버렸기 때문이겠지. 코로나 이후로 별다른 활동 없이 지내다 보니 시간의 흐름이 와닿지 않을 때가 많은데, 그래도 일주일에 하루쯤은 친구를 만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일상이 없으니 방안에 고여 별 의미도 재미도 없는 시간을 보낼 때가 많은 것 같다. 슬프다! 그래도 이제 백신 접종도 시작했고 별다른 부작용이나 문제가 없다면 올해 안에는 코로나가 종식되겠지? 하루 24시간 중 20시간을 잔다는 코알라처럼 시간을 그야말로 뭉개버리는 날이 적어졌으면 좋겠다. 자면 개운하기라도 할텐데 ..
-
프리랜서의 장점1 (=단점1)기록/흐르는 2021. 2. 26. 23:19
프리랜서의 장점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간 다녔던 회사들에서는 나를 괴롭게 하거나, 나쁜 사람은 아닌데 미운 행동을 해서 거슬리거나, 사람은 좋은데 일을 못 해서 나를 두 배로 일하게 하는 등 참 다양한 사람들로 인한 스트레스가 꽤 있었는데 ㅡ물론 좋은 분들이 훨씬 많았지만ㅡ 혼자 일하는 지금은 그런 일이 거의 없다. 물론 이건 감사하게도 내가 정말 좋은 분들과 일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_^... '왜 나는 더 부지런하지 못할까?, 왜 나는 이렇게밖에 못할까?, 왜 나는 더 진취적으로 일을 따오지 못할까?, 왜 나는 현실에 안주할까?' 등..
-
문장이 주는 순간을 간직하는 법기록/흐르는 2021. 2. 25. 00:36
꽤 많은 책을, 지금보다는 많은 책을 읽었던 대학 시절에는 아름답게 쓰인 소설 속 문장이나 깨달음을 주는 현인들의 명언, 가르침 등을 읽으면 바로 일기장을 펼쳐 그것들을 옮겨적었었다. 마치 멋진 풍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것처럼, 좋은 문장을 만나면 꼭 그 순간이 주는 황홀감과 감동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자연스럽게 필사를 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서량 자체가 줄어들면서 필사와도 멀어졌다. 가끔 짧은 시들을 필사하긴 했었지만 내가 받아적는 대부분의 것들은 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본 먹고 살기와 관련된 현실적인 내용들이었다. 향기가 나는 문장을 만나도 예전처럼 예민하게 그 향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다 정말 감사하게도, 우연히 만나게 된 소설책에 완전히 꽂혀 다시 연필을 손에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