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Korean Tutor 🌿

Today
Yesterday
Total
  • 맡겨진 소녀
    수집과/문장 채집 2024. 10. 1. 14:44

    50
    킨셀라 아저씨가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참새가 앉아서 날개를 가다듬는 창틀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작은 새는 불안해 보인다. 가끔 그 자리에 앉는 고양이 냄새를 맡은 것 같다. 킨셀라 아저씨의 시선이 어딘가 흔들리고 있다. 아저씨의 마음속 저 안쪽에서 커다란 문제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60
    아저씨가 나를 위해서 레드 레모네이드를 컵에 따라 준다. 나는 아저씨의 무릎에 앉아 레모네이드를 마시면서 비스킷 통에 담긴 퀸 케이크를 먹고 죽은 남자를 보며 그가 눈을 뜨기를 바란다.
    사람들이 왔다가 가고, 들락날락거리고, 악수를 나누고, 먹고 마시며 죽은 남자를 보고, 정말 멋진 시신이라고, 드디어 끝나서 행복해 보이지 않느냐고, 누가 그를 관에 눕혔느냐고 말한다. 또 일기예보와 옥수수의 수분 함량에 대해서, 우유 할당량과 다음 총선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는 킨셀라 아저씨의 무릎 위에서 점점 무거워지는 것만 같다.



    64
    나는 계속 걸으면서 밀드러드 아주머니의 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해가 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지만 오늘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늘을 바라보자 아직 높이 뜬 태양이, 구름이, 그리고 저 멀리 이제 막 나오는 둥근 달이 보인다.



    69
    마당을 비추는 커다란 달이 진입로를 지나 저 멀리 거리까지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 킨셀라 아저씨가 내 손을 잡는다. 아저씨가 손을 잡자마자 나는 아빠가 한 번도 내 손을 잡아주지 않았음을 깨닫고, 이런 기분이 들지 않게 아저씨가 손을 놔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힘든 기분이지만 걸어가다 보니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집에서의 내 삶과 여기에서의 내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둔다. 아저씨는 내가 발을 맞춰 걸을 수 있도록 보폭을 줄인다. 나는 작은 주택에 사는 아주머니를, 그 여자가 어떻게 걷고 어떻게 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사람들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수집과 > 문장 채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국  (0) 2025.02.15
    천명관 고래  (0) 2024.10.14
    당신의 뇌는 최적화를 원한다  (0) 2022.11.15
    Deep Work  (0) 2022.05.10
    파친코  (0) 2021.12.31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