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흐르는
문장이 주는 순간을 간직하는 법
코지일멜
2021. 2. 25. 00:36
꽤 많은 책을, 지금보다는 많은 책을 읽었던 대학 시절에는 아름답게 쓰인 소설 속 문장이나 깨달음을 주는 현인들의 명언, 가르침 등을 읽으면 바로 일기장을 펼쳐 그것들을 옮겨적었었다. 마치 멋진 풍경을 보면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것처럼, 좋은 문장을 만나면 꼭 그 순간이 주는 황홀감과 감동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 자연스럽게 필사를 했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서량 자체가 줄어들면서 필사와도 멀어졌다. 가끔 짧은 시들을 필사하긴 했었지만 내가 받아적는 대부분의 것들은 책이 아닌 인터넷에서 본 먹고 살기와 관련된 현실적인 내용들이었다. 향기가 나는 문장을 만나도 예전처럼 예민하게 그 향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러다 정말 감사하게도, 우연히 만나게 된 소설책에 완전히 꽂혀 다시 연필을 손에 들게 되었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한국어판 번역이 워낙 잘 되어있어 거슬리는 문장 없이 쭉쭉 읽어내려갈 수 있었지만 카야가 본 진짜 세상은 원어로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원서를 구매하고 필사를 시작했다. 조용한 밤에 낮게 조명을 켜고, 사각사각 문장들을 받아적는다.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진다. 비록 싸구려 노트에 고르지 못한 필체지만 오랜만에 생긴 고상한(?) 취미가 꽤 만족스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