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흐르는
가을 아침
코지일멜
2022. 10. 2. 10:26
일요일 아침 공복에 지하철을 탔다. 아침에는 찐 감자에 삶은 달걀 하나, 양배추나 바나나를 같이 먹는데 미리 해둔 게 없어 그냥 나왔다. 어젠 9시부터 8시까지 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좋아하는 일 하는 거니까 딱히 피곤하지도 스트레스 받지도 않았는데 저녁 8시가 되니까 왠지 허무했다. 발리 가서 요가하고 싶다.
치킨을 포장하며 맥주를 살까말까 백번 고민하다가 용케 참아냈다! 얼마 전에 맥주를 3일 연속 마셨더니 며칠 내내 피곤했던 기억 때문에 소중한 일요일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겨우 참았다. 세 조각 정도 먹고 나니 슬슬 느끼해지는 치킨을 먹으며 맥주 한 모금이 간절했지만 오늘 아침의 이 상쾌함이 맥주의 청량함보다 더 달콤한 것 같네 호호 잘 참았다.
‘명료하다’ 는 단어를 마지막으로 들어본 것도 읽어본 것도 써본 것도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아침 빈속으로 이어폰도 귀에 꽂지 않고 집밖을 나오니 눈 앞의 모든 것들이 감각에 꽂히듯 명료하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부지런히 울고 있는 귀뚜라미 소리도, 분주하게 영업 준비를 하고 있는 대박각 사람들도, 큰 개 두 마리를 산책시키며 개에 끌려다니는 여자도, 뿌연 하늘과 미세먼지도…
요가를 시작하고 나서 요가를 하지 않은 아침은 유난히 몸이 무겁게 느껴진다. 뻐근함으로 몸 바깥에서 느껴지는 무거움과 공복으로 몸 안에서 느껴지는 가벼움이 이질적이면서도 조화롭다. 공복일 때 모든 감각을 더욱 명료히 느낄 수 있는 게 신기하다. 그래도 얼른 몸을 풀고 배를 채워야지🦥




